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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소멸 위기 지역

지방 소멸 대응을 위한 지역맞춤형 복지정책의 필요성

by everyday1212 2025. 6. 26.

 복지정책은 국민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제공되어야 하는 보편적 가치다. 하지만 모든 지역에 동일한 복지제도를 적용한다고 해서, 동일한 효과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특히 지방 소멸 위기 지역과 대도시의 복지 환경은 극명하게 다르다. 서울에서는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보건소, 복지관, 상담센터가 농촌에서는 차로 1시간 이상 떨어져 있고, 도시에서는 신청 한 번이면 3일 내 도착하는 서비스가 지방에서는 담당 공무원의 인력이 모자라 몇 주가 걸리는 일도 다반사다.

 결국 같은 제도라 해도, 현장에서의 격차는 매우 크고, 이러한 복지 불균형은 지방에서 삶을 지속할 수 없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지방 소멸 대응을 위한 지역맞춤형 복지정책의 필요성

 이 글에서는 지방 소멸 대응 전략의 핵심 요소로 ‘지역맞춤형 복지정책’이 왜 필요한가를 구조적으로 설명하고, 현재 시행 중인 정책들의 한계와 향후 방향을 함께 제시한다

 

복지정책의 표준화가 지방을 배제하는 구조가 되다

 지방 소멸 위기 지역의 가장 큰 복지 문제는 ‘접근성’ 부족이다. 단순히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복지기관까지 이동할 수단이 없고, 고령자는 스마트폰을 다룰 줄 몰라 온라인 신청도 불가능하며, 읍면 행정복지센터 인력은 줄어, 민원 한 건 접수하기까지 수일이 걸리는 구조다.
 예를 들어 강원도 인제군의 한 마을은 복지상담 공무원이 3개월에 한 번 방문하는데, 그마저도 폭설이 내리거나 고속도로가 막히면 방문 일정은 무기한 연기된다. 문제는 이처럼 기초생활보장제도, 긴급복지지원, 노인돌봄서비스 등 전국 단위 복지제도가 지방에서는 물리적으로 작동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제공하는 대부분의 복지 프로그램은 도시 생활 구조를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급 자격 기준, 서류 제출 방식, 방문 상담 시스템 등이 모두 ‘이동 가능한 사람, 정보에 접근 가능한 사람, 기관 인프라가 존재하는 환경’을 전제로 만들어진다.
 결과적으로 소멸 위기 지역은 ‘이론적으로는 수혜 대상’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서비스 접근 자체가 차단된 곳’이 된다. 또한 복지정책은 구조적으로 개인 단위 지원에 치중되어 있어,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한 복지 생태계 설계가 어려운 것도 문제다. 고령 인구가 60% 이상인 마을에 필요한 것은 개별 수당이 아니라 ‘마을 돌봄 시스템’ 자체지만, 중앙 정책에서는 그런 틀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지자체는 예산 없이 단순 업무만 떠안고, 결국 ‘제도는 있으나 효과는 없는’ 상황이 반복된다.

 

지역맞춤형 복지정책이 작동한 사례들

 일부 지자체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중앙제도와 분리된 ‘지역 맞춤형 복지 시스템’을 자체 설계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제도 적용이 아닌, 생활환경·이동성·고립도·주민 참여율 등을 기반으로 지역 특성에 맞게 조정된 복지를 실험하고 있다.

1) 전북 장수군 – ‘이동복지상담소’ 운영

 장수군은 인구 고령화율이 48%를 넘는 지역이다. 군은 2021년부터 행정차량을 개조한 ‘찾아가는 복지차량’을 운행해 월 1~2회 마을을 직접 순회하며 주민의 복지신청, 건강검진, 상담을 원스톱으로 제공하고 있다. 또한 정기적으로 담당 공무원이 마을 어르신과 차를 마시며 심리 상태를 점검하고, 필요한 서류도 함께 작성한다. 이로 인해 복지 사각지대가 2년 새 60% 이상 감소했으며, 장수군 주민들은 “도시보다 낫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2) 경북 의성군 – ‘고령자 마을 돌봄 모델’ 개발

 의성군은 복지센터가 없는 마을이 50곳이 넘는다. 군은 마을 이장, 부녀회, 자원봉사단을 중심으로 ‘지역 주민이 직접 복지 주체가 되는 마을케어’ 시스템을 만들었다. 공무원 대신 이웃이 말벗과 심부름, 병원 동행을 제공하고, 그 활동은 군청이 관리하고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특히 돌봄 활동은 단순 노동이 아니라 정서적 지지, 공동체 연결로 확장되어 고립으로 인한 자살 위험률도 눈에 띄게 낮아졌다고 보고되었다.

3) 충남 서천군 – ‘복지+문화+관광 통합센터’

 서천군은 복지기관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면 지역에 작은 도서관, 보건소 진료소, 민원 접수 창구, 마을카페를 통합한 복합 공간을 운영 중이다. 이 공간은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되어 운영되며, 복지와 생활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마을형 복지 플랫폼’으로 외지 청년 창업가 유입까지 연결되는 긍정적 결과를 만들고 있다. 이처럼 맞춤형 복지 모델은 삶의 환경과 맞닿은 ‘살아있는 정책’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역맞춤형 복지를 위한 정책 설계 방향

 앞서 살펴본 사례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지역이 스스로 복지를 설계하고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다음과 같은 정책적 전환이 필요하다.

  1. 지자체 복지 예산 자율성 확대
    중앙정부의 일괄 분배 예산 구조에서는 지역 특성을 반영하기 어렵다. 복지정책 중 일정 비율은 지자체가 ‘자율 편성, 자율 설계’할 수 있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2. 마을 단위 복지 매니저 제도 도입
    전담 공무원이 아닌 지역 거주자 중심의 복지 관리자를 양성하고, 생활 기반 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3. 복지 + 주거 + 교통 + 교육의 통합 서비스 설계
    개별 제도 중심이 아니라 ‘주민 삶 전반을 연결하는 플랫폼형 복지’가 필요하다. 한 기관에서 다뤄야 접점이 생기고, 이용률도 높아진다.
  4. 디지털 소외 계층 맞춤형 오프라인 서비스 유지
    고령층은 온라인 복지 신청이 어렵기 때문에, 찾아가는 서비스, 서류 대행, 전화 신청 등 아날로그 방식 병행이 반드시 필요하다.
  5. 청년과 고령자를 연결하는 세대 통합 복지 구조
    귀촌 청년과 지역 노년층을 연결하는 생활 협업형 모델은 단순한 복지를 넘어 일자리·주거·정서적 관계까지 아우를 수 있다.

 이러한 정책은 지방소멸을 단순히 ‘사람을 불러오는 문제’로 보지 않고, 남아 있는 주민의 삶을 지키는 구조적 정책 설계로 전환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복지는 표준화가 아니라, 사람의 삶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지방을 살리는 복지는 단지 ‘혜택을 더 주는 것’이 아니다. 그 혜택이 닿을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지금의 복지정책은 제도적으로는 완비되어 있지만, 실제로 그 제도를 이용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이 지방에 있다. 접근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고, 신청할 수 없으면 그 제도는 아무 의미가 없다. 지역맞춤형 복지정책은 바로 그 틈을 메우는 해법이다. ‘왜 이 정책이 여기에 필요한가’를 묻는 과정, ‘이 마을에는 어떤 방식이어야 효과가 있을까’를 고민하는 행정이 지방 소멸을 막는 핵심 전략이 된다.

 복지는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그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지역은 반드시 인구를 잃는다. 하지만 반대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복지가 설계되는 곳에는 사람이 떠나지 않는다. 지방을 지키는 건 결국, 복지다. 그리고 그 복지는, 각자의 지역에 맞춰 다시 짜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