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간다.’ 한때 희귀한 선택처럼 여겨졌던 이 문장이, 이제는 정부의 공식적인 지역 재생 전략이 되었다.
고령화와 인구 유출이 심화되는 지방 소멸 위기 속에서, 정부는 청년과 중장년층의 농촌 이주를 장려하며 ‘귀농·귀촌 활성화’를 주요 정책 기조로 채택해왔다. 실제로 2022년 기준, 귀농·귀촌 인구는 연간 50만 명 이상을 기록했고, 그중 상당수가 소멸 위기 지역으로 유입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이들이 지역에 정착했는가, 지속적으로 살아가는가에 있다.
이 글에서는 귀농·귀촌 장려 정책이 실제로 소멸 위기 지역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구체적인 사례와 통계를 통해 성과와 한계, 그리고 정책적 방향성을 짚어본다.
귀농·귀촌 장려 정책의 주요 내용과 지역별 실행 방식
정부가 운영 중인 귀농·귀촌 지원 정책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정착 지원금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청년창업농 영농정착 지원사업'을 통해 만 40세 미만 귀농인에게 최대 3년간 월 100만 원의 지원금을 제공하며, 농지 구입 및 시설 설치 자금도 연 1~2%대 저금리로 융자해 준다.
둘째는 교육 및 기술 지원이다. 각 도농복합형 지자체는 귀농 희망자를 대상으로 영농기초교육, 선도농가 멘토링, 지역탐방 프로그램 등을 운영한다.
셋째는 주택 및 생활 기반 지원이다. 폐가 리모델링 비용 보조, 임대형 귀촌 주택 공급, 자녀 교육 연계 서비스 등이 이에 해당된다. 예를 들어 전북 임실군은 귀농 청년에게 빈집 리모델링 비용 2,000만 원 + 2년간 월세 전액 지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강원도 홍천군은 귀농창업 시 5년 내 세금 감면 + 판로 연계 지원을 병행 중이다.
이처럼 지자체별로 제도는 다양하지만, 기본 방향은 경제적 장벽을 낮춰 유입을 확대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실제 효과: 지방 소멸 위기 지역 인구 유입 증가와 정착률은 미지수
정책 시행 이후 일부 긍정적인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통계에 따르면, 귀농·귀촌 인구는 2020년 이후 매년 50만 명을 넘고 있으며, 그중 약 40%는 소멸위기 지역(인구 감소 지역)에 유입되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 덕분에 초등학교 폐교가 유예되거나, 마을회관, 보건소 등의 유지가 가능해진 사례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정착률’이다. 귀농·귀촌 3년 이내 이탈률은 평균 30~40%, 일부 지역에서는 50%에 육박한다. 특히 청년층은 영농 경험 부족, 수익 창출의 어려움, 사회적 고립 등의 이유로 1~2년 내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경북 영양군의 경우, 2021년 귀촌 청년 15가구 중 7가구가 2년 이내 이탈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들은 "농업은 생각보다 돈이 되지 않고, 지역사회에 쉽게 녹아들 수 없었다"고 응답했다. 또한 고령화된 기존 주민들과의 갈등, 폐쇄적 문화, 정보 부족 등도 정착을 가로막는 현실적 요인으로 지적된다. 즉, 유입은 일시적 증가였을 뿐, 지속 가능한 인구 회복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책의 한계와 앞으로의 방향
지금의 귀농·귀촌 장려 정책은 진입 장벽은 낮췄지만, 지속성에 대한 설계는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착 이후 소득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3년 지원이 종료되면 자립이 어려워지는 구조이며, 장기적인 마을 내 관계망 형성, 정서적 돌봄, 유통 지원 체계 등은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 또한 정책이 대부분 ‘개인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청년 단독 또는 소규모 가족 단위 정착은 어렵고, 공동체 기반의 정착 모델, 예를 들어 청년협동조합, 지역기반 커뮤니티 농업, 셰어하우스형 귀촌 모델 등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기 쉽다. 앞으로의 정책은 ‘입주를 유도하는 정책’에서 ‘살게 만드는 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대안이 제시된다:
- 귀농 5년차 이상 장기 정착자에 대한 인센티브 강화
- 지역 청년과 외부 귀촌인의 협업 모델 설계
- 청년 귀농인의 판로 확보를 위한 온라인 쇼핑몰 연계 및 브랜드 개발
- 마을 기반 정서 돌봄 공동체 지원 예산 신설
지속 가능한 귀촌은 돈이 아니라 삶으로 유인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 + 관계 + 문화 + 교육이 함께 설계된 종합 정책이 필요하다.
공동체 정착의 현실과 마찰 요인
귀농·귀촌 정책이 지역에 새로운 인구를 불러오더라도, 기존 마을 공동체와의 관계 형성은 또 다른 장벽이다. 특히 중장년층 이상의 귀촌인이 기존 마을의 관행·관계·의사소통 방식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 ‘이방인’으로 분리되거나 소외되는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농사는 기술이기도 하지만, 지역 안에서 누가 어떤 방식으로 농지를 사고 파는지, 어느 조합에 가입하는지, 누구와 함께 일하는지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일종의 생태계이기 때문이다.
전북 고창군에 귀촌한 30대 부부는 “주말마다 텃밭 체험을 하며 살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막상 들어오니 누구와도 인사를 나누지 못했고, 작은 오해가 1년간 갈등으로 번졌다”고 말했다. 또한 일부 지역에서는 귀농인이 ‘지원금만 받고 떠난다’는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어, 초기에 마을 주민과의 불신이 뿌리 깊은 경우도 많다.
이처럼 귀농·귀촌 정책이 진짜 효과를 발휘하려면, 경제적 조건뿐만 아니라 사회적 적응 과정에 대한 설계와 지원도 병행돼야 한다.
정책 설계에 필요한 심리·문화적 요소
귀촌·귀농이 성공하려면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돼선 안 된다. 실제로 오랜 도시생활을 접고 지방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외로움, 문화적 단절감, 자존감 저하를 호소하기 쉽다. 이 문제는 지역 정책에서 간과되는 부분이다. 단지 영농교육이나 주택 지원이 아니라, 마을의 정서적 분위기, 정착인의 고립감 해소, 이주민 커뮤니티 조성 등을 포함한 심리적 환경 설계가 필요하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귀촌인 멘토 매칭’, ‘이주민 커뮤니티 운영비 지원’ 등 정서 기반 정책을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은 전국적으로 제도화되지 못한 상태다.
결국 지역에 사람이 머무는 이유는 돈이 아니라 관계의 지속 가능성이다. 귀농·귀촌 정책의 다음 단계는, 공간의 공급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문화를 디자인하는 작업이어야 한다.
사람을 부르면, 살게도 해야 한다
귀농·귀촌 정책은 분명히 지방 소멸 대응 전략의 중요한 축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전략은 “사람을 오게 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그들이 오래 살게 만드는 데”는 부족했다. 진짜 효과란 숫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랫동안 그 지역에 삶을 뿌리내렸는가이다.
앞으로의 귀농·귀촌 정책은 ‘지원금 몇 년’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웃고, 관계 맺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소멸 위기 지역을 살리는 건, 한 사람의 정착이 만들어내는 공동체의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은, 장기적인 정책 설계와 사람 간의 연결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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